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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 100만 시대,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묻다 [치매를 말하다 ①]
2025년,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만성 질환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치매는 고령화가 가져온 가장 무거운 사회적 과제 중 하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치매 환자는 2026년에 100만 명, 2044년에는 2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머지않아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이 치매 환자를 가족으로, 이웃으로, 혹은 자신의 문제로 마주하게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치매에 대한 국민 인식은 여전히 '공포'와 '부담감'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치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현 대한신경과학회 부이사장이자 대한치매학회 차기 이사장으로 내정되어 있는 박기형 교수(가천대 길병원 신경과)는 "치매는 조기 발견과 적절한 대응으로 진행을 늦추고 삶의 질을 지킬 수 있는 질환"이라며 "'치매 진단=절망'이 아니라 '조기 발견=더 나은 치료의 출발점'이라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치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어떤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박기형 교수와 함께 치매를 둘러싼 오해의 실체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치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병을 키운다
지난 6월 대한치매학회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90.4%가 치매에 대해 공포와 부담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는 단순한 질병에 대한 불안을 넘어, 기억과 자아를 잃는다는 공포, 가족에게 전가될 돌봄 부담, 그리고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치매는 삶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두려움이 오히려 조기 진단과 치료의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는 점이다. 치매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병원 방문을 미루다, 병이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진단이 이루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박기형 교수는 "임상 현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게 바로 이 지점"이라며 "초기 증상이 나타난 환자일수록 불안감에 검사를 미루고, 가족에게조차 증상을 숨기려 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치매 판정을 받은 환자와 가족은 진단 사실을 감추고, 대인 관계를 끊으며 스스로 고립되기 쉽다. 사회적 관계가 끊기면 환자 돌봄의 책임이 고스란히 가족에게 전가된다. 돌봄자는 신체적·정서적으로 소진되고, 가족 내 갈등이나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러한 현실은 곧 우리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부담으로 이어진다. 조기 진단과 치료의 기회를 놓치면서 의료비와 돌봄 비용이 증가하고,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은 크게 저하된다. 박 교수는 "치매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낙인은 환자와 가족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킨다"며 "이는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를 외면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라고 지적했다.
치매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5가지
치매를 무조건적인 두려움과 낙인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 뒤에는, 사실과 다른 통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정확한 이해와 대응을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오해들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은 박기형 교수가 짚은 치매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5가지다.
① 나이 들면 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치매의 초기 증상들을 단순히 나이 들면 생기는 증상으로 가볍게 여겨 병을 악화시킨다. 하지만 나이 들면서 생기는 기억력 감퇴 등을 단순한 노화 현상으로만 생각하고 지나치면 안 된다. 치매 증상들은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뇌의 병리적 변화로 인해 인지 기능이 손상되는 명확한 질환이다.
박 교수는 "치매 증상이 악화된 뒤 병원을 찾는 가족 중에는 단순한 노화로 생각해 치료 시기를 놓친 경우가 많다"며, 치매는 나이가 들면 누구나 겪는 현상이 아니라 치료와 관리로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질환이다"라고 설명했다.
② 치매는 불치병이다?
치매는 치료해도 소용없다는 인식이 여전히 많지만, 치매는 진행성 질환이지 '불치병'은 아니다. 박기형 교수는 "전체 치매의 약 10%는 치료가 가능하고, 30%는 진행을 억제할 수 있다"며 "특히 최근에는 알츠하이머병도, 조기에 발견하면 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를 제거해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조기에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시작하면, 많은 환자들이 일상생활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의미 있는 삶을 이어갈 수 있다.
③ 치매는 병명이다?
'치매'는 하나의 병명이 아니라, 기억력·언어·판단력 등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증후군을 의미한다. 즉, 여러 원인 질환에 의해 나타나는 상태로, 단일 질환이 아니다. 대표적인 원인 질환에는 알츠하이머병, 혈관성 치매, 루이체 치매, 전측두엽 치매 등이 있으며, 각각 원인·증상·진행 속도·치료법이 다르다.
④ 알츠하이머병이 곧 치매다?
이 중 알츠하이머병은 가장 흔한 원인으로, 전체 치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치매와는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박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은 초기엔 증상이 거의 없고, 약 10년 뒤 경도인지장애가 나타나며, 이후 3~5년이 지나야 본격적인 치매 증상이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단순한 증상만으로는 정확한 판단이 어려우며, 정밀한 검사와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⑤ mri로 진단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mri 한 번이면 치매 여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mri는 뇌의 구조를 살펴보는 검사로, 뇌 위축 여부나 뇌졸중·종양·염증 등의 유무를 확인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치매는 mri 결과 하나만이 아닌, 다양한 검사를 종합해서 진단한다.
박기형 교수는 "치매를 진단하려면 병력 청취, 인지 기능 검사, 혈액 검사, 그리고 mri 또는 pet-ct 같은 영상 검사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65세 미만의 초로기 치매의 경우에는 mri에서 이상이 없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심한 뇌 위축 소견이 있어도 정상인지기능을 보이는 경우도 흔하다. 따라서 mri 결과만을 믿고 안심하거나, 추가로 필요한 검사를 미루는 일은 피해야 한다.
인식의 전환과 함께 병행돼야 할 정책적 전환… "돌봄에서 예방으로"
인식의 변화만큼 중요한 것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돌봄 인프라 확충, 지역사회 대응력 강화, 공공의료체계 정비 등 여러 부문에서의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2008년 '치매관리법' 제정 이후 5년마다 종합계획을 수립해왔으며,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 도입으로 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에서 무료 조기검진, 환자 등록·관리, 가족 교육 등을 제공하고 있다.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지 못한 경증 환자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된 점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박기형 교수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가 부러워할 만큼 치매 분야에 많은 국가적 노력을 기울여왔다"면서도 "전문 인력 부족과 지역 간 돌봄 격차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치매안심센터나 장기요양기관 등 현장에서는 전문 의료인과 사회복지 인력이 부족해, 개인 맞춤형 돌봄보다는 기본적인 서비스 제공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와 농촌 간에는 접근성과 서비스 질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는 환자와 가족이 받을 수 있는 지원의 양과 질을 결정짓는 요인이며, 궁극적으로 치매 관리의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앞으로는 인프라 확충에 더해, 전문 인력 양성과 지역 간 균형 있는 자원 배분 등 보다 정교한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
다만, 돌봄 인프라 확충만으로는 치매 대응에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앞으로는 예방과 조기 치료에 보다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는 증상이 나타난 뒤의 돌봄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질병 발생 자체를 줄이는 '예방 중심' 접근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치매는 일단 발병하면 점진적으로 악화되고, 사회적·경제적 부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최근 승인된 알츠하이머 초기 치료제는 이러한 변화의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박 교수는 "앞으로는 증상이 없는 고위험군에도 예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조기진단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곧 발표될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에 예방과 조기진단 정책이 적극 반영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치매는 끝이 아닌 '새로운 동행'의 시작
치매는 단순한 진단 기준이나 의료 지표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질환이다. 한 개인의 기억과 판단력, 관계와 역할 등 삶의 핵심 요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변화를 동반한다. 따라서 치매 대응은 질환 관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
박기형 교수는 "치매는 흔히 '다시 아기가 되는 병'이라 한다"며 "이는 기억 감소를 넘어 사회적 판단력이 저하돼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태를 뜻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인지 기능이 저하되더라도, 환자의 존엄성과 권리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남는다. 박 교수는 "치매 환자 역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존중받아야 하며, 이는 최근 정신질환 환자 인권 논의와도 맞닿아 있다"고 강조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이들이 보호의 대상이면서도 자기결정권과 사회적 존중을 요구받는 것처럼, 치매 환자 역시 그러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치매 환자를 가족의 부담이 아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될 때 치매는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과제로 자리 잡게 된다. 박 교수는 "치매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동행의 시작"이라며 "두려움에 머무르기보다, 환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사회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